이병헌 소녀시대 싱크로율 100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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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31 18:33 2010/01/31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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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찌개의 명가들은 공통적으로 김칫소로 배추를 채우지 않았다. 찌개를 끓이면 국물이 깔끔하지 않아서다.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이 기본양념. 젓갈도 건더기가 없는 액젓만 쓴다. 숙성 기간은 1년을 넘지 않는다.

‘굴다리식당’은 경기도 파주에서 재배한 배추만 쓰고 멸치 액젓·고춧가루·다진 마늘만 넣는다. 파주의 저장고에서 30~45일 숙성한다. ‘장호왕곱창’은 새우젓·고춧가루·다진 마늘·황석어젓국을 넣고 가게 옆의 저장고에서 1년간 숙성한다.

‘광화문집’은 배추를 썰어서 절인다. 절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다. 젓갈과 액젓은 일체 안 넣고, 오직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만 넣어 익힌다. ‘원조 조아저씨 김치찌개와 막겹구이’는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에 새우젓·멸치액젓을 더하고, 상온에서 겨울에는 1달, 여름에는 4~5일 익힌다.


▶굴다리식당

‘굴다리식당’의 김치찌개는 냉면 그릇에 담겨 나온다. 1977년 서울 마포구 도화동 굴다리 밑에 가게 문을 열었을 당시, 인근에는 인쇄 공장들이 즐비했고 지하철 공사도 한창이었다. 공장과 공사 현장의 인부들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소박한 밥집‘굴다리식당’을 찾았다.

하루는 주인 김정숙(76)씨가 단골손님들에게 서비스로 특별 메뉴를 내놓았는데 그 인기가 대단했다. 메뉴 중 하나였던 설렁탕의 소고기 사골 육수에 김치와 돼지고기를 넣고 끓인 김치찌개가 그것이다. 결국 단골들의 간청에 따라 김치찌개를 주 메뉴로 팔기 시작했다. 빨리 일터로 돌아가야 하는 이들을 위해 미리 끓여 놓았다 내놓았다. 푸짐한 양은 기본이었다. 이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육수는 소고기 사골과 잡 뼈를 밤새 푹 고아 만든다. 여기에 돼지앞다리 살과 목살·김치· 특제 양념장을 넣고 2시간 동안 끓인다. 김치 국물은 색깔을 내기 위해 한 국자 정도만 넣는다. 매일 아침 20인 분의 큰 솥 6개에 김치찌개를 끓여 놨다가 여러 냄비에 나눠 담는다.

주문이 들어오면 한 번 팔팔 끓여 냉면 그릇에 담아낸다. 사골 육수 넣고 오래 끓여 낸 김치찌개 국물 맛은 깊고 진하다. 비계가 적당히 섞인 두툼한 돼지고기에 김치 맛이 알맞게 배어 있다. 이 진국 김치찌개가 무한 제공된다.

김치찌개 집 치고 밑반찬도 다양하다. 구운 김·달걀말이·총각김치·콩나물무침·부추무침·가자미조림이 나오는데 모두 골고루 맛있다. 특히 황해도 장단이 고향인 김 씨가 이북식으로 젓갈을 거의 넣지 않고 만든 총각김치는 깔끔하고 시원하다. 2003년부터 김 씨의 아들 이강우(53)씨가 몇 골목 떨어진 곳에 분점을 운영하고 있다. 김치찌개 6000원, 02-712-0066(본점)·02-706-0323(분점).


▶장호왕곱창

1980년에 문을 연 ‘장호원곱창’은 가게 이름에서 보듯 원래 곱창집이었다. 하지만 점심시간에는 곱창 장사가 시원치 않아 1대 주인 이종원(68)씨는 김치찌개를 메뉴에 추가했다. 양은 냄비에 시큼하게 익은 김치를 잔뜩 넣고 끓인 김치찌개는 점심 식사 손님들은 물론 저녁 술 손님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10년 전, ‘성당 형님’인 이 씨로부터 가게를 인수한 2대 주인 김재하(66)씨는 김치찌개에 주력했다. 고향인 전북 고창에서 재배한 배추와 직접 빻은 고춧가루로만 김치를 담아 저장고에서 숙성시킨다. 이것이 1년 후에도 김치의 아삭함이 살아있는 비결이라고. 김 씨는 “김치찌개 매출이 전체 하루 매출액 중 3분의 2를 차지한다”고 말한다.

이 집의 김치찌개는 초강력 신 맛으로 유명하다. 주문을 하면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김치· 돼지 앞 다리 살·양파·파들이 조리되지 않은 상태로 담겨 나온다. 자작한 국물이 유난히 시뻘건 이유는 김치 국물에 소량의 맹물과 고춧가루·고추장·다진 마늘을 더한 때문이란다.

뚜껑을 덮고 센 불에 10분 정도 끓이면 양은 냄비가 폭발할 듯 끓는다. 김치 한 조각 씹으니 새콤하다. 국물을 떠먹으니 진저리를 칠 정도로 시다. 그런데도 얼큰한 뒷맛에 은근히 끌린다. 반찬은 달랑 김치 하나다. 그것도 찌개용 김치와 똑같은 것이다. 마니아들은 이것을 그냥 먹거나 찌개 속에 넣어 먹는다는데 일반 손님들에게는 무성의하게 느껴 질수도 있겠다. 김치찌개 6000원, 02-756-5070.


▶광화문집

‘광화문집’은 33년 전 그대로다. 허름한 식당 건물에서부터 빛바랜 간판, 낡고 닳은 식탁과 의자까지. 김치찌개 맛과 가격도 1977년 개업 이후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그때도 1인분에 5000원을 받았어요. 근데 비싸다고 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처음에는 술안주용으로 팔았거든요. 고기가 많이 들어가니까 셋이 와서 소주 안주로 찌개 하나 시키면 충분했지요.” 주인 노병복(67)씨의 말처럼 이 집의 김치찌개는 안주용으로 사랑 받아 왔다. 그래서 이 집에서는 찌개에 당연히 딸려 나온다고 여겨지는 공깃밥을 따로 판다.

김치국물과 맹물을 3대1 정도로 섞고 김치·두부·돼지 목살을 넣고 초벌로 끓여낸다. 찌개 국물은 매운 맛과 신 맛, 짠 맛이 조화를 이뤄 시원하고 칼칼하다.

노 씨는 “찌개국물은 찌개국물로 먹어야 제 맛”이라며 라면 사리도 판매하지 않는다. 돼지고기도 푸짐하게 들어가고 찌개 양이 많아 둘이 하나 시켜 먹어도 충분하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겉절이는 찌개용 김치와 똑같은 양념을 쓰고 채 썬 파만 추가해 만든다.

젓갈과 액젓이 일체 들어가지 않아 감칠맛은 덜하지만 찌개 속 김치와는 다른 싱싱한 맛을 즐길 수 있다. ‘광화문집’에서 김치찌개만 주문하면 종업원 아주머니들이 어김없이 “달걀말이는?”하고 쏘아대듯 묻는다. 김치찌개와 함께 이 집의 대표 안주라는데 굳이 시켜먹을 만큼 특별한 맛은 아니다. 김치찌개 5000원·공기밥 1000원, 02-739-7737.


▶원조 조아저씨 김치찌개와 막겹구이

28년째 서소문동 직장인들의 점심을 책임지고 있는 김치찌개집이다. 1·4후퇴 때 월남한 부모님이 1982년에 문 연 가게를 아들 조문성(45)씨가 이어 받아 운영 중이다.

부모님의 '영일원' 시절에는 분식집에 가까웠다. 조 씨는 1990년에 가게를 물려받으면서 ‘백화점 식 메뉴’를 정리하고 김치찌개에 주력했다. 그는 “점심시간에 오는 직장인들 대부분이 김치찌개를 시켰다. 저녁시간에는 안주로 많이 찾으면서 자연스럽게 대표 메뉴가 됐다”고 말한다.

이 집의 김치찌개는 살짝 부대찌개에 가까운 스타일이다. 스테인리스 냄비에 김치·돼지 앞 다리 살·두부·소시지·떡을 담는다. 소고기 육수에 김치 국물 대신 다대기를 풀어 냄비에 넉넉히 부어 낸다. 다대기는 소고기 육수·고춧가루·다진 마늘·다진 생강·새우와 조개를 말려서 간 것을 섞어 만든다. 젊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2000년부터 어머니 표 김치찌개에 소시지와 떡을 추가했단다.

예전 맛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위해 주문 전 미리 말하면 소시지를 빼주기도 한다. 하지만 소시지 들어간 조아저씨 김치찌개도 일반 부대찌개 보다 덜 텁텁하고 깔끔하다. 안주용 김치찌개는 김치찌개백반에 딸려 나오는 조밥 대신 찌개에 콩나물을 듬뿍 넣어 준다. 김치찌개백반 6000원·김치찌개안주 2만 4000원(대), 1만 8000원(중), 1만 2000원(소), 02-752-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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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30 16:13 2010/01/30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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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타항공그룹 이상직 회장
증권맨으로 출발 37세에 상장기업 인수, 6년 만에 14개 자회사 거느려

<이 기사는 주간조선 2089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소년의 집은 가난했다. 한때 번창했던 아버지의 나전칠기 사업은 기운 지 오래. 경영을 맡은 큰형이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소년의 학비는 요구르트 배달을 하던 누나와 학교 선생님이던 작은 형이 번갈아가며 대줬다. 큰형은 숙식을 부담했다. 용돈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명문 전주고를 나왔지만 소년은 늘 궁핍했다. 자존심이 강했던 소년은 그런 현실이 싫었다.

“가난한 사람은 다 가난한 이유가 있는 거야.” 친했던 한 선배가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대학생(동국대 경영학과)이 된 소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라면값이 없을 땐 친구들에게 밥 얻어먹기가 부끄러워 학교를 빼먹던 그였다. 가난이 싫어서 가출도 했었다. ‘먹기 위해’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전전했던 그에게 선배의 말은 ‘가난은 대물림 된다’는 충격적인 얘기로 들렸다.

‘죽어라 아르바이트를 해서 살고 있는데 앞으로도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다니. 그럼,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는 속울음을 쏟아내며 그날 밤을 하얗게 새웠다. 밤 새워 고민해도 선배의 말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런 자신에게 더 화가 났다.


“더 이상 가난하게 살지 않겠다”

photo 이상선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그는 그날밤 인생의 목표를 새로 세웠다. ‘전공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분야로 나가리라. 그래서 쓰러진 가업을 다시 일으켜 세우리라.’ 20년 뒤의 목표까지 구체적으로 세운 그는 대학 졸업 후 현대증권에 입사, 이름을 날리는 증권분석가가 됐다. 1990년대 IT붐을 맞아 증시에 투자한 돈을 수십 배로 불렸으며 37세의 나이에 상장기업(케이아이씨·플랜트 제조)을 인수한 뒤 6년 만에 회사 규모를 10배로 키웠다. 그가 2007년 10월 저비용항공(low cost carrier)사업에 진출, 2009년 1월 7일 김포~제주행 첫 비행기를 띄웠다. 이렇게 날기 시작한 ‘이스타항공’은 2009년 12월 말레이시아 쿠칭과 일본 고치에 부정기 국제선을 취항시켰고 정확히 1년 만인 2010년 1월 7일 탑승객 100만명을 돌파했다.

“더 이상 가난하게 살지 않겠다”며 주먹으로 눈물을 닦던 소년은 이제 케이아이씨, 삼양감속기(엘리베이터 동력전달기기 제조), 현대종합기계(압력분사기기 제작), 동명통산(자동차 고무부품 제조), 새만금관광개발(부동산개발), 이스타투자자문, 이스타벤처투자, 이스타항공 등 14개 회사를 이끄는 중견 그룹의 회장이 됐다. 이스타항공그룹 이상직(46) 회장은 “2020년까지 매출 10조원, 순익 1조원을 달성, 20대 기업으로 진입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난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족쇄

이상직 회장을 만난 것은 지난 1월 4일. 이날은 ‘103년 만에 처음’이란 폭설이 쏟아진 날이었다. 항공사로서는 오래 기억할 수밖에 없는 운명의 날, 그를 만난 시각은 한창 붐빌 때인 오후 3시. 하지만 본사가 있는 서울 여의도엔 쏟아진 눈폭탄 때문에 택시 한 대 오가지 않는 기이한 풍경이 벌어졌다.

“서설(瑞雪)이죠. 새해 새 업무를 시작한 첫날 서설이 내렸고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됐으니 앞으로 좋은 일이 많이 있을 겁니다.” 이 회장은 103년 만의 천재(天災)를 상서로운 눈으로 해석하며 싱긋 웃었다. 그는 각진 네모꼴 얼굴에 우뚝 선 콧날을 갖고 있었다. 말투는 느리고 어눌했다. 한눈에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느닷없이 코끼리 얘기를 꺼냈다.

“인도에선 아기 코끼리를 길들일 때 한쪽 발에 족쇄를 채웁니다. 아기 코끼리는 족쇄로부터 벗어나려고 온 힘을 다해 버둥거립니다. 하지만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포기하고 말지요. 그런데 그 코끼리가 성장해 어른이 되면 충분히 족쇄를 부숴버릴 수 있는 힘을 갖습니다. 하지만 ‘족쇄를 벗을 수 없다’는 어렸을 때의 기억 때문에 족쇄를 깨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됩니다. 주인이 주는 건초와 땅콩을 얻어먹으며 대여섯 평밖에 안 되는 공간에서 평생을 보내고 마는 거지요. 심지어 불이 나더라도 코끼리는 족쇄를 부수지 못하고 슬프게 울면서 타죽고 맙니다. 이 코끼리의 운명은 뭘까요. 결국 코끼리의 마음 아닐까요. ‘족쇄를 벗을 수 없다’는 코끼리의 마음이 평생 굴욕적인 삶을 살게 만든 것입니다.”

이 회장은 “인생의 가장 큰 장애물은 부정적인 마음”이라고 했다. ‘난 할 수 없어’란 마음이 스스로의 족쇄가 돼서 성공하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처음엔 누구나 아기 코끼리 같습니다. 벗어나려고 수없이 시도하고, 수없이 실패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실패의 충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공으로 가는 길은 의외로 간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성공을 예측하고 그대로 믿으면 됩니다.”

이 회장은 “현대그룹 창업자인 정주영 회장을 존경한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던 1989년 그는 평소의 ‘로망’이던 현대그룹에 지원서를 제출, 제1지망으로 현대증권을 택했다. 동기 2000명 중 20명이 현대증권에 입사했다. “경제적으로 쇠락한 집안에서 모든 것을 해야 할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정한 목표에 가장 빨리 오르는 길은 금융시스템을 배우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당시 증권시장은 주가지수 1000포인트를 찍으며 호황을 달리고 있었다. 억대 연봉자가 속출하면서 ‘1등 신랑감’으로 증권맨이 꼽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신출내기 증권맨에겐 먼 이야기였다. 영업부에 배속된 이 회장은 선배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며 투자 관련 공부를 기초부터 새로 시작했다. 그렇게 내공을 쌓은 뒤 ‘베팅’했다. 증권맨들에게 허용된 근로자주식저축 계좌를 개설한 것이었다.

“증권사 직원들은 주식투자를 하지 못하도록 금지돼 있잖습니까. 그런데 당시 근로자주식저축은 증권맨들도 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1300만원을 갖고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2년 뒤에 보니 계좌에 2억원이 들어있는 거예요. 수익률 1540%를 낸 거죠.”

이 회장은 “그때 복리의 개념을 알게 됐다”고 했다. “예를 들어 1년에 2배씩 10년간 수익을 낸다면 단리의 개념이죠. 하지만 복리로 따지면 첫 1년엔 2배로 동일하지만 2년째엔 4배, 3년차엔 8배, 4년 뒤엔 무려 16배로 차이가 벌어지지 않습니까. 이 개념을 적용하면 10배의 성장을 이루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됐습니다.”


워렌 버핏에게 길을 묻다

이 회장은 이렇게 마련한 자금으로 또 다른 승부수를 던졌다. 당시는 유명한 벤처붐이 일던 1990년대 말. 이 회장이 선택한 종목은 벤처의 대명사라 할 만한 ‘엔씨소프트’와 ‘다음’이었다. 벤처 주식으로 “평균 10배가량의 순익을 냈다”는 이 회장은 이렇게 장만한 10배의 이익금으로 ‘프리코스닥’ 종목에 투자했다. 프리코스닥 역시 근로자주식저축과 마찬가지로 증권맨들에게 거래가 허용되었다. 이 회장은 20개 회사에 투자, 그중 2곳에서 또 한 번의 이익을 거뒀다. 그는 어떻게 투자 대상을 족집게처럼 고를 수 있었을까.

이스타항공 ‘스페이스호’의 내부. 우주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워렌 버핏입니다. 그분이 제 마음속의 ‘현인’이에요. 그분을 만나진 못했지만 그분으로부터 투자 철학을 배웠습니다. 그분이 이렇게 말했어요. ‘시장의 흐름을 예측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게다가 수급을 예측하며 다른 투자자들의 심리까지 읽어야 하는데 이게 가능한 일인가’라고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 ‘모든 주식 뒤엔 회사라는 실체가 있다’는 겁니다. 주식은 그냥 종잇조각이 아니라는 간단한 논리죠. 다시 말해 ‘증시가 없어도 그 회사 주식을 사겠느냐고 물었을 때 사겠다는 대답이 나올 경우엔 그 회사 주식을 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회장은 “버핏의 철학을 배운 뒤 기업의 순자산가치를 우선 순위에 두게 됐다”고 했다. “주식을 사는 것은 그 회사를 사는 것이란 확고한 가치관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으로 시장을 바라보니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개인이나 시장의 심리에 휘둘리지 않게 되더군요. 그렇게 하니까 투자 기법과 투자 마인드가 안정을 찾게 됐고 이는 자연스럽게 장기투자로 이어졌습니다.”

이 회장은 이렇게 마련한 자금으로 2001년 ‘㈜케이아이씨’란 플랜트 전문회사를 인수했다. 이 회사는 제철이나 석유화학 플랜트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상장기업이다. 이 회사 대표이사를 맡았던 그는 회사 규모를 10배로 키워 2007년 8월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두 달 뒤인 그해 10월 ‘이스타항공’을 설립해 항공산업에 뛰어들었다.


10년 뒤 동양최대 항공사를 꿈꾼다

“왜 생소한 분야에 뛰어들었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특정 분야가 성장할 것이란 판단이 들면, 저는 덤벼듭니다. 익숙한 분야냐 아니냐 하는 것보다 전체적인 트렌드가 어느 분야로 가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결정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리더는 책임지겠다는 의지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리더 자리를 내놔야 합니다.” 이 회장이 말을 이었다. “독과점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기존의 대형 항공사들은 이미 포화상태입니다. 서비스·관광수요가 늘면 늘수록 트렌드는 저비용항공사가 될 것입니다. 외국의 경우를 봐도 그렇습니다. 미국, 유럽 모두 저비용항공사가 주요 시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동북아시아는 전체 동양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엔 당시 제주항공(2006년 취항)과 한성항공(2008년 운항중단) 외엔 저비용항공이 없었어요. 그래서 투자를 결심했습니다.”

이 회장은 프로펠러기가 주를 이뤘던 저비용항공 시장에 과감하게 보잉737기를 도입했다. 자동항법장치를 갖춘 신기종이었다. “항공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입니다. 사실 프로펠러기가 반드시 덜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는데, 바람이 불면 롤링(rolling)이 심해서 사람들이 의외로 불안해 하더라고요. 그래서 보잉737을 도입했습니다. 승무원 유니폼은 서울 동대문 시장에서 주문제작했습니다.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여서 보다 싼값에 항공티켓을 판매하려 한 것입니다.”

이스타항공 김포~제주 간 가장 싼 요금은 편도 1만9900원. 요금체계는 8단계로 다양하지만 가장 비싼 것도 6만9900원에 불과하다. 이 회장은 여기에 아이디어 하나를 추가했다. ‘추억’을 선물하자는 것이었다.

“우리 회사의 각 항공기마다 스카이, 우주선, 어린왕자, 크루즈, 타임머신 등의 별명을 붙이고 그에 맞는 인테리어를 갖췄습니다. 예를 들어 스카이호의 천장엔 하늘과 구름이 그려져 있고 어린왕자호엔 칼을 찬 어린왕자가 승객을 향해 웃고 있습니다. 우주선호를 타시면 스페이스 셔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죠. 그리고 승무원이 승객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어드립니다. 승객들은 이스타항공을 타실 때마다 ‘새롭다, 재미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비행 자체가 추억이 되는 거죠.”

독특한 서비스와 파격적인 가격의 결과는 수치로 나타났다. 2009년 1월 7일 김포~제주 노선에 취항한 지 정확히 1년 만인 지난 1월 7일 탑승객 100만명을 돌파한 것이다. “항공 산업은 초기투자가 많이 듭니다. 항공기를 마련하고, 사람을 뽑고, 승무원을 훈련시키는 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보통 이 기간을 3년으로 잡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2년차인 올해부터 흑자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0년 뒤인 2020년엔 동양 최대의 항공사로 이스타항공을 키울 것입니다.”

가난이 싫다며 울던 소년이 사회생활 20년 만에 “2020년 20대 그룹에 진입하겠다”며 포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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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7 17:51 2010/01/17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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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이미지의 탤런트 선우재덕 스게티 사장은 20년차 사업가다. 그의 사업경력은 크게 두 시기로 나뉜다. 제1기는 장사를 했던 1990~2002년까지다. 1990년 서울 성신여대 앞에 떡볶이 전문점을 열었는데 매장을 카페처럼 멋지게 꾸민 아이디어가 통해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어느 날 친누나가 제안해 떡볶이 전문점을 정리하고 1998년에 광릉수목원 근처에서 카페를 시작했다. 이 사업도 잘 됐지만 선우 사장이 바빠지면서 몇 년 후 누나에게 넘겼다. 제2기는 그가 장사 차원을 넘어 기업을 경영한 시기다. 2003년 8월부터 현재까지다. 지금의 ‘CEO’ 선우 사장을 만든 경험의 8할은 바로 이 시기의 몫이다.

2003년 8월 그는 후배와 함께 중저가 스파게티 프랜차이즈 ‘스게티’를 설립했다. 처음에는 보통 연예인들처럼 초상권 제공, 마케팅 협력 정도만 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2004년에 선우 사장은 후배의 지분을 모두 인수했다.

“후배와 저의 회사 경영 방침이 잘 안 맞았어요. 저는 가맹점과 본사가 같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후배는 본사 위주로 영업을 하려고 해서 충돌이 잦았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대개 연예인 쪽에서 손을 떼기 마련이다. 하지만 선우 사장은 거꾸로였다. 후배에게 “내가 회사를 맡겠다”고 제의, 아예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섰다. 과거에 떡볶이 전문점과 카페 사업 성공 경험이 있던 터라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인수를 하고 보니, 황당하게도 회사의 재무상태가 엉망이었다. 그가 모르던 빚도 상당했다. “인수할 당시에 그런 것도 확인을 안했으니 정말 준비 없이 시작한 거죠.”

하지만 초반에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해 매장 수가 빠르게 불어났다. 매장 수가 가장 많았던 2006년에는 최대 35개의 매장이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후 사업이 꺾이기 시작했다.

“경기가 나빠지며 사업 환경이 어려워졌어요. 그리고 스게티가 공략했던 시장이 생각과 달리 잘 열리지 않았습니다.”

스게티는 5000원대 스파게티로 대중화한다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경제력 있는 소비자들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를 먹고, 일반인들은 김밥, 라면 같이 아예 저렴한 음식을 선호하더라고요.” 5000원대 스파게티는 타깃 지점이 애매했던 것이다.

스게티에도 물론 장점이 있었다. 본사에서 반조리한 음식을 공급하기 때문에 조리사를 고용하지 않아도 음식을 만들 수 있어서였다. 가맹점들로서는 상당한 인건비 절약 요소인 것. 하지만 기본적인 고정비 리스크는 어쩔 수 없었다. 스게티의 식자재를 전부 이탈리아에서 수입했고, 일반 건물에 입점한 가맹점의 경우 매장 임대료와 인건비 등은 낮추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불경기에다 시장이 잘 형성되지 않자 견디지 못한 가맹점들이 하나둘 문을 닫았다. 현재 스게티 매장은 전국에 22개가 남아 있다.

“일반 매장은 많이 없어졌는데, 할인점이나 백화점의 푸드코트에 들어간 매장들은 거의 살아남았어요. 푸드코트는 대부분 일정 수 이상의 유동인구를 확보하고 있고, 인테리어비 등도 거의 들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이더군요.”

관련 사업을 연구하다 홈쇼핑 시장을 개척, 포장 제품 공급도 하고 있다. 면과 소스를 30초만 데우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제품으로, 회사 전체 매출의 10~15% 정도를 차지해 비중도 작지 않다. 선우 사장은 이제 한계가 있는 중저가 스파게티 사업의 확장 대신, 다른 식당 체인을 구상하고 있다. 그는 2007년 12월 분당에 한우전문 식당 ‘선우랑한우랑’을 직영으로 열고, 이 시장을 경험 중이다. 처음에는 한우구이 전문점 프랜차이즈를 생각했는데, 2년쯤 운영한 지금은 방향을 약간 바꾸려고 한다.

“한우구이 식당은 리스크가 꽤 큰 사업 같아요. 믿을 만한 공급처 찾기도 어렵고, 투자비도 많이 들거든요. 한우 가격이 너무 많이 올라서 원가를 맞추기도 쉬운 게 아니고요.”

대신, 그는 설렁탕·갈비탕·국밥·된장찌개 등 점심시간에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한우 관련 메뉴 위주의 체인은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생존한 스게티 매장의 경험을 살려 푸드코트 위주로 출점할 생각이다.

스게티 본사 실적은 가맹점이 최대 수준이던 2006년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 2008년 매출은 17억원, 영업적자와 순적자가 각각 3억원이었다. 2007년과 매출은 비슷했지만 영업적자 규모가 9000만원에서 3배 이상 확대됐다. 하지만 선우 사장은 2009년 결산을 앞둔 지금은 “실적이 바닥을 찬 것 같다”며 희망찬 미소를 지었다.

수산물 유통으로 돌파구 마련

선우 사장의 명함에는 ‘대표 선우재덕’이라는 글씨와 함께 회사명이 두 개 적혀 있다. 하나는 스게티, 다른 하나는 새벽통상이다. 새벽통상은 새우살, 꽃게 등 냉동 수산물을 수입하는 회사다. 새벽통상이 수입한 냉동 수산물을 스게티가 웨딩홀, 호텔 등 국내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2008년 초부터 매출원 다변화 차원에서 시도했다. 스게티 실적의 반등을 이 냉동 수산물 유통 사업이 이끌고 있다고 한다.

“수산물 유통 사업이 다행히 잘 되고 있어요. 프리마호텔 등 큰 계약처를 여러 곳 잡았고, 2010년에는 거래처를 더 늘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익 규모도 괜찮아서 2009년 매출은 더 커지고, 적자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합니다.”

선우 사장은 그 외에도 돌파구를 찾기 위해 부지런히 일하고 있다. 2009년 들어 일본에 경북 상주 막걸리를 공급하는 사업권을 땄고, 또 분당 수내동에 ‘선우와사케와’라는 직영 사케(일본 술)바도 새로 열었다. 사케바 역시 경험을 쌓은 후 나중에 체인화를 시도할 생각이다.

6년차 식당 프랜차이즈 CEO가 된 선우 사장은 이제 뭣 모르고 스게티를 인수했던 그 시절과 사뭇 달라졌다. 2004년에 스게티를 완전히 인수한 후 몸으로 부딪혀 익힌 경영의 교훈이다. 지금까지 월급도 없이 하루에 4~5시간 자면서 묵묵히 일해 왔다.
“전에는 투자비만 맞춘 사람들이면 그냥 가맹점을 내줬는데, 그런 분들 중에 경영마인드나 성실성 부족으로 못 버티는 경우가 많더군요. 앞으로는 가맹점 계약을 할 때 열심히 장사를 하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는 분들 위주로 가맹점주를 엄격하게 선정할 생각입니다.”

Posted by Takumi

2010/01/17 10:48 2010/01/17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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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태닉' 주인공 디카프리오의 실제 연인 이스라엘 슈퍼모델 레파엘리

한국에선 일부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가 편법으로 병역을 기피해 종종 물의를 빚는다. 한국처럼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는 이스라엘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런데 식스 팩 복근의 건장한 남성이 아니다. S라인의 날씬한 여성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속옷모델이자 영화 ‘타이태닉’의 주인공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애인이다. 이스라엘은 남녀 모두에게 징병제를 적용하고 있다.

이스라엘 군(Israel‘s military)에게 새로운 ‘적’이 나타났다고(have a new enemy in its sights) 외신들은 전한다. 유명한 슈퍼모델이자 속옷모델(a famous supermodel and lingerie model)인 바 레파일리(24·Bar Refaeli)다.

그런데 이스라엘 군 당국의 후속 조치(Israeli army‘s follow-up measures)가 우스꽝스럽다(be ludirous). ‘금발의 폭탄’에 의해 광고되는 상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촉구하고(call for a boycott of products advertized by the ‘blonde bombshell)나선 것이 전부다.

레파엘리는 가족 친구와 결혼한 뒤 곧바로 이혼하는(marry a family friend and divorce him shortly afterwards) 방법으로 국민병역을 회피한 것으로 전해져 지탄의 대상이 되고(be under fire for reportedly evading nationsl service) 있다.

하지만 법을 어긴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의 현행법상(under Israeli law) 결혼한 여성들은 군 복무를 하지 않아도 된다(married women do not have to serve). 그렇지 않을 경우엔 군에서 2년간 의무 복무를 해야(the otherwise has to do compulsory two years in the military) 한다.

바 레파일리

레파엘리는 영화배우 디카프리오와의 연애 뿐 아니라(as well as her romance with actor DiCaprio) 현란한 속옷-스포츠웨어 광고로 유명하다(be famous for her sizzling lingerie and sportswear advertisements). 국내에서보다 외국에서 더 유명하다.

파시오나타 란제리(프랑스 속옷 브랜드)를 광고한 그녀의 가장 최근 비디오(her most recent video, advertising Passionata Lingerie)는 할리우드의 전설인 브리짓트 바르도의 영감을 불러일으켰다는(evoke the spirit of Hollywood legend Brigitte Bardot)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와 관련, 이스라엘 군의 아비 자미르 소장은 이스라엘 의류회사 폭스를 지칭하며(naming Israeli clothing company Fox) 그녀가 관련된 상품들에 대한 불매운동을 촉구하고(call for a boycott of products she is associated with) 나섰다. “그녀는 매일 집에 돌아가서 거울에 비쳐진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며(look at herself in the mirror)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레파엘리는 결혼 사실이 알려진 이후 논란의 대상이 됐다(become controversial since the revelations about her marriage). 게다가 납세를 피하기 위해 이스라엘 비거주자로 등록신청을 한(file an application to be registered as a non resident in Israel to avoid paying tax) 것으로 드러나면서 더욱 거센 비난에 직면하게 됐다.

에스티 긴즈버그

레파엘리는 국민병역을 회피하지 않은 동료 금발 슈퍼모델 에스티 긴즈버그와 나쁘게 대비되면서(be contrasted unfavorably with fellow blonde supermodel Esti Ginzberg) 국민들의 ’공적‘으로 낙인 찍혔다. 최근 수영복을 군복과 맞바꿔 갈아입은(trde her swimsuits for military fatigues) 올해 19세의 긴즈버그(the 19-year-old Ginzberg) 역시 자신처럼 그렇게 하지 않은 레파엘리를 비판하고(also criticize Refaeli for not doing so) 나섰다.

그러자 레파엘리의 어머니가 “군 당국은 창피한 줄 알아야 한다”며 딸에 대한 논란에 가세(join the debate about her daughter)했다. 그녀는 “내 딸을 공격하기 전에 정부부터 검증해봐서 정부내 누가 병역을 기피했는지부터 밝혀야(should check the government and see who in government did not join the army) 할 것”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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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7 10:47 2010/01/17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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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기업 설문조사 결과 "점수보다 인성·면접 중시"
토익 하한선 없앤곳 많아
"신문·책 등 열심히 읽어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올 2월 서울 소재 사립 A대학 경영학과 졸업 예정의 박모(28)씨는 '1급 스펙(조건)의 소유자'다. 캐나다 어학연수를 다녀와 토익 950점을 땄고, 학점은 재수강을 통해 3.5점대까지 끌어올렸으며, 맹학교 봉사활동 6개월 등 이력서에 채울 훌륭한 취업 스펙을 두루 갖추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이후 10여곳의 대기업 취직시험에서 줄줄이 낙방했다. 일부 기업에선 서류심사 단계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박씨는 "도대체 내가 왜 떨어지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박씨는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일까.

구직(求職) 행렬이 끊이지 않는 서울 장교동 서울지방노동청 취업지원센터 게시판에‘꿈은 이루어진다’‘희망은 성공의 절반’등 구직자를 격려하는 각종 글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극심한 취업난 속, 대부분 구직자들은 박씨처럼 괜찮은 스펙을 만드느라 휴학에다 해외연수까지 불사한다. 취업 포털사이트에는 "취업 스펙의 3대(大) 요소는 학벌·학점·토익"이라든지, "무슨 말씀? 학벌·학점·토익에다 인턴십·자격증·봉사활동까지 '6종 세트'가 갖춰져야 한다"는 등의 글들로 가득하다.

'스펙이 합격을 좌우한다'는 상식은 어디까지 진실일까. 본지가 취업포털 커리어와 함께 국내 30대 기업(대한상의, 2008년 매출액 기준)의 인사 담당 임원·간부를 설문 조사한 결과, 수치 중심 단순 스펙의 중요성은 의외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스펙의 대표 격인 토익 점수의 제출 하한선을 제시한 곳은 24개 응답 기업 중 7곳에 불과했고, 아예 기준이 없다는 기업은 14곳이었다.

또 대학마다 '학점세탁·성형'이 유행이지만 정작 뽑을 때 학점 제한선을 두는 기업은 7곳뿐이고, 기준이 없는 곳이 17곳이었다. 경시대회나 자격증을 필수로 요구하는 기업은 1~2곳에 불과했다.

설문에 응한 상당수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은 "점수 위주의 스펙보다 인성이나 면접 중심으로 뽑고 있다"고 밝혔다. '스펙'의 가치를 둘러싸고 구직자의 상식과 구인 기업의 기준 사이에 큰 격차가 있는 것이다.

◆토익·학점 제한 없는 곳이 대부분

입사 시험에서 토익점수의 하한선을 둔 기업(7곳)보다 두지 않은 기업(14곳)이 갑절로 많았다. 커트라인을 두는 기업 중 가장 높은 점수대는 800점(포스코)이었고, 대부분은 700~750점대였다. B기업 관계자는 "토익이 700점이냐, 800점이냐를 두고 당락을 좌우하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좋다"면서 "다만 다들 워낙 높은 토익점수를 제출하고 있으니, 일부 합격생의 토익점수만 따지면 '토익 고득점=합격'이란 착시현상이 나타날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삼성전자에 입사한 김모(28)씨는 "나보다 토익 점수 높은 친구 중 불합격생도 많았고, 토익점수 낮은 친구 중 합격생도 많았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 특이한 점은 토익 점수 대신 토익 말하기 시험 점수를 요구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채용시 토익 스피킹(혹은 OPIc) 점수를 요구하는 기업은 삼성전자·삼성생명·엘지디스플레이 등 5곳, 입사 면접 때 원어민 영어면접 등 영어말하기 평가가 있는 곳은 현대자동차·에쓰오일 등 10곳으로 나타났다.

'세탁'된 학점에 대한 기업의 불신도 상당했다. 지난해 KT는 100명을 선발하는데, A학점 이상이 500명 이상 몰렸다. KT 인사팀은 "요즘 대학들이 워낙 학점을 후하게 주고 있어 기업 입장에서 학점은 인재 판별의 기준이 못 된다"면서 "최하위 학점인 경우만 지원자의 성실성에 문제가 있다는 정도로 참조할 뿐"이라고 말했다.

취업 컨설팅업체 이우곤HR연구소의 이우곤 소장은 "요즘 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번듯한 수치로 가득한 스펙 채우느라 대학 4년을 소모한 자기소개서에 비우호적"이라며 "휴학 기간에 어학점수 높이기 외에 다른 활동은 안 보이고, 학점도 전공과목 등 특정 분야에 푹 빠졌던 흔적이 없는 평범한 자료들은 서류심사부터 탈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심층면접과 전공 면접 중시

이달 초 GS칼텍스에 입사한 김재범(29)씨는 "최종 합격한 동료들끼리 모임을 가져보니 '인간성 테스트'로 뽑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면서 "합격자들은 합숙 등의 과정에서 동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이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면접에서 '대학 때 어떤 친구를 많이 사귀었나' 등을 묻는가 하면, 아주 구체적인 비즈니스 실무현안을 던져주고 직접 해결해보라는 등 전공지식도 강도 높게 테스트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30대 기업 조사에서도 김씨와 같은 맥락의 결과가 나왔다. '채용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자격증이나 영어실력"이라고 답한 기업은 3 곳이었고, 나머지 기업들은 ▲면접을 통한 인성 ▲회사에 대한 열정 ▲도전정신과 창의성 ▲사회봉사활동 등 다양한 경험 등을 중시한다고 밝혔다.

해외연수를 다녀와 지난달 우리은행에 입사한 김모(26)씨 역시 "후배들에게 취업 노하우를 말한다면 신문이나 책을 열심히 읽고 인턴활동에 열심히 나서라고 얘기할 것"이라며 "면접 등을 해보면 결국 생각하는 힘을 평가 받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면접에서 전공실력 여부를 묻는 기업도 많았는데, 한국씨티은행 등 10개 이상이 그렇게 답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전공이나 인성면접을 중시하는 이유는 토익 등 기존 스펙으로만 우수 사원을 뽑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절감했기 때문"이라며 "대학생 상당수가 입학하자마자 4년 내내 스펙 쌓기에만 집중해, 폭넓은 교양 쌓기나 팀워크 경험 등 정작 기업이 원하는 역량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 스펙(spec·요구 조건)

제품 만들 때 요구되는 기준이란 뜻의 ‘specification’을 줄인 말. 취업에 필요한 기준이란 의미로 통용된다. 원래는 학력·학점·토익 점수를 지칭했는데,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인턴십, 자격증, 봉사활동 등으로 의미가 확대되고 있다.

Posted by Takumi

2010/01/11 11:39 2010/01/1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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