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벨트 해제의 명암

"산은 신성함의 장소이자 공경과 숭배의 대상인 암자나 사찰이 있는 장소이다. 한국인에게 산은 가까이 있지만 쉽게 정착해 거주할 수 있는 곳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한국의 아파트 위주 주거문화를 비판한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책을 쓴 프랑스 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한국인들이 국토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산을 활용하지 않는 이유를 전통적인 신앙에서 찾았다. 산과 구릉지에 주택이 들어서 있는 유럽 출신인 줄레조에게는, 토지가 부족하다고 한탄하면서도 도시 주변의 산을 활용하지 않는 한국이 이해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의 설명은 절반만 옳다. 현대에 들어 한국인들은 산을 활용하지 않았다기보다는 '못했다'고 하는 편이 옳다. '그린벨트'와 같은 엄격한 녹지 보전 정책 때문이다. 6·25 전쟁으로 민둥산으로 변한 국토, 급격한 산업화에 따른 도시의 무한팽창, 아무 곳에나 들어서는 판잣집…. 역대 정부는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각종 토지규제를 도입했다. 특히 박정희 정부가 70년대에 도입한 그린벨트는 도시확장과 녹지 훼손을 막는 '마지노선' 역할을 했다. 그래서 좌파들도 그린벨트에 관해서만은 박정희 정부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일본도 그린벨트 제도를 도입하려 했지만, 재산권 침해를 내세운 농민과 지주들의 격렬한 저항으로 흐지부지됐다. 서슬 퍼런 권위주의 정권이었기에 가능한 정책이었다.

하지만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사유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고 끝내 김대중 정부부터 그린벨트를 허물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는 그린벨트에 국민임대주택단지를 집중적으로 건설했고, 이명박 정부도 최근 분당 신도시의 5배에 해당하는 그린벨트를 해제해 임대주택 등을 짓기로 했다.

녹지 보호에 큰 역할을 했지만 그린벨트는 공짜가 아니다. 다락같이 비싼 대도시의 집값·땅값은 그린벨트로 대표되는 토지 규제의 대가이다. 우리 국토의 6% 정도만 도시용도이고 나머지는 각종 규제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녹지 보전이라는 명분에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신도시를 지을 수밖에 없었고 이게 도로 건설과 교통체증의 악순환을 초래해 또 다른 환경훼손을 불러왔다. 서울에서 1~2시간 떨어진 곳의 대지 가격도 평당 100만원이 넘어, '전원주택'이 오히려 도심 아파트 가격보다 비싼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새 정부 들어 규제 위주의 토지시장에 지각 변동이 벌어지고 있다. 그린벨트, 농지, 군사보호시설 등에 대한 규제를 풀어 가용 토지의 비율을 6%에서 10% 수준으로 늘리겠다는 것. 일부 전문가들이 규제 완화로 땅값이 치솟을 것이라고 하지만 이는 단기적인 현상에 그칠 것이다. 가용토지가 2~3배 늘어나면, 토지가 부족해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토지신화는 붕괴할 수밖에 없다. 다만 정부가 개발이익의 환수와 녹지 난개발을 막을 수 있는 종합적인 대책을 함께 세워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린벨트 해제지에 임대아파트만 고집하기보다는 저밀도의 단독 주택을 짓고 그 개발이익으로 도심 내 임대주택을 확보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그린벨트도 녹지 훼손 정도를 정확하게 살펴 해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토지 규제완화는 궁극적으로 부동산 가격을 낮출 수 있지만 치밀하고 종합적인 보완대책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린벨트 난개발, 토지 투기는 불을 보듯 뻔하다.

Posted by Takumi

2008/09/24 11:16 2008/09/2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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