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특한 '영주권 사병'들

"엄마, 저 내일 비행기타고 한국으로 군대가요"
지난해 127명 자원입대… 4년간 3배 급증
매운 음식·의사소통 힘들어도 '한국인 자부심' 느껴
영주권 유지하게 매해 외국 보내주고 항공료 지원도

해병대 1027기 훈련병 박재성 이병은 식판을 앞에 놓고 쩔쩔매고 있었다. 식판 위 반찬은 닭찜, 오이무침, 김치두부찌개. 하나같이 고추장, 고춧가루로 버무리거나 양념한 '빨간색 반찬'들이다.

땀까지 흘리면서 맛있게 먹는 동기들을 보며 박 이병도 용기를 냈다. 닭찜을 찢어 입 속으로 넣었다. 아니나 다를까 혀가 따가워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맨 밥만 떠 먹고 반찬은 동기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렇게 1년7개월이 흘러, 지난 1일 병장 계급장을 달았다. 그는 일본 영주권자다. 한국군에 입대하지 않아도 됐다. 그런 그가 2006년 8월 해병대에 자원했던 것이다. 입대 초기, 훈련은 둘째 치고 음식 하나에도 쩔쩔맸던 그는 서툰 한국말로 이렇게 말했다.

"내 전투복에 붙은 빨간 명찰, 생활관(내무반)에 달린 내 이름을 보면 가슴이 뭉클합니다. '내가 대한민국을 지키는 군인 중의 한 명이구나'라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영주권자 입대 신청 4년간 3배 증가

박 병장처럼 외국 시민권이나 영주권이 있는데도 한국 군대에 자원 입대하는 이른바 '영주권 사병'이 늘고 있다. 현재 해병대를 비롯해 육·해·공군의 각 예하부대에서 복무 중인 영주권 사병은 120여명.

아직 숫자는 많지 않지만, 영주권이 있으면서 입대 신청을 한 사람은 2004년 38명에서 작년에는 127명으로 3배 이상 늘었다. 병무청은 이런 영주권 사병들의 병영 체험을 모은 수기집 '대한사람 대한으로'를 최근 펴냈다.

외국 영주권이 있는 사람은 입대를 계속 연기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연기해 만 36세가 되면 병역이 면제된다. 신체 일부를 훼손하면서까지 병역을 피하려는 사람이 있는데, 왜 이들은 스스로 입대할까.

박 병장은 입대 연기를 신청하려다 오히려 해병대에 자원한 경우다. 연기(延期) 절차를 알아보려 병무청 홈페이지에 접속했다가 해병대를 소개하는 동영상을 본 것이다. 입대 경쟁률이 6대 1이나 되는 사실에 놀랐고, 진흙으로 범벅이 된 채 군가 '팔각모 사나이'를 부르는 장병들 모습에서 강인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저렇게 힘든 훈련을 받으면서 얻으려고 하는 게 뭔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미국 오클라호마 주에서 태어난 손재일(22)씨는 아버지 권유에 따라 해병대에 자원했다. 그는 시력이 나빠서 신체검사에서 4급을 받자, 라식 수술을 한 뒤 재검에서 '1급'을 받고 입대했다. 지난 1일 제대한 손씨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더 강하게 만든다'는 해병대 구호를 새기면서 군생활을 했다"며 "내가 경험한 어떤 어학연수나 여행, 인턴십(internship), 봉사활동보다 해병대 생활이 값졌다"고 말했다.

필리핀 영주권자인 육군 1107 야공단의 이상현 병장(22)은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입대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이민을 간 그는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필리핀 친구들로부터 걸핏하면 놀림을 당했다고 한다. 친구들과 자주 싸우자 학교는 그를 '보호관찰대상'으로 삼았다. 한국인이라는 게 그에게 도움이 됐던 적은 별로 없었다.

그는 "대학에서 만난 예비역 출신인 한국 유학생들이 워낙 자주 군대 시절 무용담을 이야기 하기에 '나도 한국인인데 한번 갔다 오자'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 일본 영주권자 신분으로 해병대에 입대한 박재성 병장(오른쪽)이 부대 동료들의 응원 속에 팔씨름을 하고 있다. /해병대1사단 제공

◆군 생활 소득은 정체성 찾기, 자신감

군 생활이 영주권 사병들에게 준 것은 다양했다. 해병대 박재성 병장은 일본에서 한국 이름을 말하면 아르바이트 구하기에 지장이 있어 숨겼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휴가 때 정복을 입고 외출하면 얼굴도 모르는 분이 다가와 '몇 기냐'고 묻고 1만~2만원씩 주곤 한다"며 "한국 해병대 출신이라는 게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상현 병장은 입대 전 168㎝ 키에 몸무게가 85㎏으로 비만이었다. 지금은 몸무게가 10㎏ 줄었다. 그는 "군 생활은 필리핀에서 외톨이였던 나를 자신감 있고 적극적이며 남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으로 변화시켰다"고 말했다.

정부는 외국 영주권자 입대를 장려하기 위해 2004년부터 군 복무 기간 1년에 1~2번 영주권이 있는 나라로 휴가를 보내고 항공료까지 지원해주고 있다. 1년에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아서 영주권이 소멸되는 걸 막기 위해서다. 한편으론, 영주권자의 병역 면제 조건을 더 까다롭게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영주권자 병역면제 적용 연령을 현재의 36세에서 40세까지 연장하는 것이다. 갈수록 유학이나 해외 근무자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제도가 외국서 경험을 쌓은 우리 인재들이 한국에 기여할 길을 막는다며 이중국적 허용론도 나오고 있다.

Posted by Takumi

2008/03/24 09:11 2008/03/24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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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炅勳 2008/03/24 09:11 # M/D Reply Permalink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한번 가보고 싶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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