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자취·차이나타운 등 새 문화 생겨
대구대 생명공학과 강선철 교수 연구실의 석·박사과정 학생은 6명. 이 중 5명이 외국인이다. 한국인은 윤정인(여·24·석사과정)씨 한 명뿐. 나머지는 인도(2명)·방글라데시(2명)·베트남(1명) 등에서 온 유학생들이다. 이 학교의 대학원 강의와 연구실 공용언어는 영어. 외국인 학생들이 오히려 한국학생인 윤씨를 대화에서 소외시키지 않으려고 배려하는 장면이 자주 목격된다.
인도 출신 유학생 비벡 바자파이(30)는 최근 2년간 SCI급 논문 13편을 쓴 이 연구실의 '보배'. 비벡은 "한국은 새로운 기술과 실험장비가 많고 재정 지원이 많아 유학을 하기 매력적인 나라"라고 말했다.
군산대 전자정보공학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필리핀인 마테오 로미오 마크(25)씨는 올해 1월 지도교수와 실험실 동료 학생들과 함께 '주차관리 시스템' 관련 특허를 출원했다. 정부 장학금으로 지난 2005년 군산대에 입학한 마테오는 이 학교 분산시스템 실험실의 핵심 브레인. 지도교수인 이재완 교수는 "마테오는 영어를 잘하기 때문에 지식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우수하고 연구 활동에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 ▲ 영남대 분자생물학 연구실에서 네팔에서 온 유학생 프라티(아랫줄 왼쪽에서 세 번째)와 고마(맨 왼쪽)가 지도교수인 최인호 교수 (가운데)와 함께 실험결과를 토의하고 있다. /영남대 제공
국내 대학에 유학 온 외국인 학생이 6만명을 돌파했다(2008년 4월 현재 6만3952명).
2003년 1만2314명에서 5년 만에 국내 외국인 유학생이 5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외국인 재학생 수가 대학에 대한 평가지표로 활용되고, 국내 고교졸업생 수가 감소하면서 수년 전부터 사립대를 중심으로 외국인 유학생 유치 경쟁을 벌인 결과다.
국내 유학 중인 외국인 학생을 국적별로 보면 아시아권이 압도적으로 많다. 교과부에 따르면, 중국학생이 4만4746명으로 전체의 70%를 차지하고, 일본유학생 3324명(5.2%)·몽골유학생 2022명(3.2%)·베트남유학생 1817명(2.8%) 등이다. 아시아국가 출신은 92%를 차지했다. 반면 미국·캐나다 등 북미권은 전체 유학생 중 3.3%, 유럽국가 출신은 2.4%에 불과하다.
이처럼 전체 외국인 유학생의 3분의 2를 중국 학생들이 차지하면서 일부 대학가 앞은 '차이나 타운'으로 변해가는 곳도 있다. 학생들이 기숙사를 나와 자취생활을 시작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대전 배재대 후문 인근 도마동. 최근 이곳에는 중국어로 된 간판을 내건 가게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지난 5월 중국 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환전소'가 처음 등장하더니, 최근 몇 주 사이 정통 중국식 음식점과 식료품점, 휴대전화 대리점 등이 속속 문을 연 것이다.
4년 전만 해도 교환학생을 포함해 194명에 불과했던 배재대 내 외국인 학생들이 최근 1000명을 돌파했고, 이 중 중국 학생이 850여명에 달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환전소를 운영하는 중국유학생 초명(28·배재대 석사과정)씨는 "지금은 중국 학생들이 주요 고객이지만, 앞으로 대전 지역 중국 관련 사업들이 배재대 인근으로 몰려와 주요 상권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며 기대감을 보였다. 베이징에 있는 한국인 거리 '우다오커우(五道口)'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북 경산시 영남대 생명공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네팔인 유학생 프라티 버즈라짜르여(여·28)와 고마 야카미(여·29)는 매달 한 번씩 영남대 후문 근처에서 열리는 '장터'로 나간다. 파키스탄인 상인이 중동지역 음식자재를 싣고 오면, 이 학교에 유학 중인 인도·파키스탄·네팔출신 유학생 30여명이 모이는 것이다.
외국인 학생들의 증가현상은 수도권보다는 지방대학에서 더 활발히 일어난다. 김진걸 경북대 대외협력홍보팀장은 "지방 공동화(空洞化), 수도원으로의 인재 유출 등으로 연구인력 확보가 어려운 지방대학에서 동남아 대학의 우수 학생을 적극적으로 데려오는 추세"라고 말했다.
◆다국적 기숙사·자취방 풍경
대학마다 외국인 학생이 증가하면서 '교환과외(language exchange)'도 활발해졌다. 태국에서 온 한 여학생(익명요구·24·이화여대 석사과정)에게 같은 과 홍모(여·24)씨는 한국어 개인교사다. 수업 후, 홍씨는 태국 유학생이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쉬운 한국말로 풀어 설명해준다. 반대로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이 태국학생은 홍씨에게 영어를 가르쳐 준다.
'다국적' 유학생들끼리는 기숙사나 자취방에 함께 사는 경우도 늘고 있다.
배재대로 유학 온 베트남 유학생 웬티밍 짱(여·23·외국어로서의 한국어학과 석사 2학년)과 중국인 송몽몽(여·23·경영학과 3학년)은 교내 국제학생지원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만난 단짝친구로 작년부터 학교 근처 자취방에서 함께 살고 있다. 국적도, 학년도 다른 이들은 "우린 성격이 너무 잘 맞아서 하루 15시간 이상, 수업 시간을 빼곤 항상 붙어 다닌다"고 말했다.
경북대 기숙사 212호실에는 '한 지붕 세 국적'의 대학생들이 살고 있다. 백지혜(여·20·한국)씨, 중국인 우문정(여·24)씨, 네팔 출신 샤라다 파우델(여·28)씨가 '기숙사 삼국지'의 주인공. 샤라다씨가 한국말에 서툴기 때문에 이 방의 '공용어'는 영어다.
어느 언어로도 완벽한 소통은 불가능하지만, 여자 3명이 모인 이 방은 항상 왁자지껄하다.
- ▲ 학교 앞 자취방에서 생활하는 배재대 유학생 짱(왼쪽₩베트남)과 몽몽(중국)
◆대학 국제화의 질적 수준도 높여야
이같이 외국인 유학생들이 급격히 늘고 있지만, 정작 한국사회는 이들과 함께 생활할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지적이 많다. 대부분 대학 강의가 한국어 중심으로 이루어져 언어소통에 애로를 호소하는 학생들이 많다. 외국인에 배타적인 한국사회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영남대 유학생인 중국인 장리리(여·21)씨는 "교내에서 마주치는 한국학생들이 '여기가 중국이야, 한국이야'라고 비아냥거릴 때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다.
대학들의 외국학생 끌어들이기 출혈경쟁을 하면서 수준 이하의 학생들이 국내로 유학을 오는 것은 문제다.
박진태 대구대 국어교육학과 교수는 "외국유학생이 늘고 있다는 것은 한국 대학이 점점 국제화되고 있다는 좋은 신호이지만, 이와 동시에 대학들은 질적(質的)인 국제화도 함께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Posted by Takum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