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에서 무역구제를 양보할 수 없는 이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정점으로 치달으면서 긴장감이 가시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펼쳐진 수를 읽는 절차만 남았다고 평가한다. 다른 일부에서는 주요 쟁점 분야의 대립각이 여전하므로 많은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는 시각을 나타낸다.
 

 무역구제 분야는 실질적인 중요도에도 불구하고 특정 산업이나 이해 당사자에게 국한되지 않음으로 인해 협상 비중이 약화되었다. 5차 협상에서 우리 측의 5개 요구사항을 미국 측이 수용할 수 없다고 하여 협상이 중단된 이후 중요한 6차나 8차 협상에서도 전혀 논의되지 못하였다. 

  무역 자유화로 인한 자국 산업의 피해를 보전해주기 위한 무역구제 조치로는 반덤핑관세와 상계관세 부과, 세이프가드가 있다. 우리나라가 FTA 협상에서 반덤핑관세 부과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미국이 비관세 장벽 조치로 가장 빈번하게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5년부터 2006년 상반기까지 세계무역기구(WTO)에 신고된 세계 전체 덤핑행위 조사건수는 2,938건이었는데, 미국이 착수한 것이 366건으로 인도(448건)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동안 반덤핑관세 조치를 실제로 부과한 건수로도 세계 전체 1,875건의 12.6%는 미국의 몫이었다. 미국의 덤핑행위 조사 대상국들 가운데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에 이어 3번째로 많은 건수를 제소당했다.

  미국이 세계 최대 교역국이므로 반덤핑관세 부과 건수도 이에 비례하여 많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의 반덤핑법이 불합리하게 적용되어 온 영향도 크다고 판단된다. 이는 WTO가 지난해 말 미국에게 제로잉(zeroing)조항 수정을 요구한 사실로도 반증되었다.

  한미 FTA 협상에서 무역구제 부문을 쉽게 양보할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FTA 체결 이후에도 무역구제 조치가 비관세 장벽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반덤핑관세와 상계관세의 부과 요건은 자의적으로 적용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산업피해의 판단 기준으로 수익성 저하나 고용 여건 악화를 설정할 경우 이러한 결과가 특정 수입상품의 덤핑행위에서 비롯된 것인지, 경기변동이나 부실경영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분별하기란 간단하지 않다. 둘째, 미국의 반덤핑 규제는 공정거래 질서 확립의 목적 이면에 자국 사양산업의 보호라는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령 이번 협상을 통해 미국 섬유 및 자동차 시장의 개방을 얻어낸다 하더라도, 우리 수출 상품의 저가 경쟁력이 덤핑행위로 오인되거나 미국 내 산업피해가 확대 해석될 소지는 그대로 남아있다. 일례로 철강제 로프와 케이블 수출업체인 DSR제강은 1990년대 후반 미국 상무부로부터 3차례나 덤핑행위로 제소를 당했으나 모두 무혐의 처리되었다. 조사 기간 동안 해당 업체는 막대한 기회비용과 거래비용을 아무 보상없이 지불해야만 했다. 셋째, 반덤핑 조치는 조사과정에서도 수입규제의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덤핑행위 의혹에 대한 조사가 착수되고 예비판정 결과 잠정조치가 취해지면 최종 판단 이전에라도 반덤핑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넷째, FTA 협상은 절차보다 실익이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협상단은 우리 측이 요구한 무역구제 관련 5개 조항은 법 개정을 필요로 하므로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진작 표명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최대 규모의 FTA 협상을 진행하면서 상대국의 국내법 절차를 존중하기 위해 국가 실익을 일방적으로 양보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고위급 협상에서 우리 측이 양보안으로 제시한 “무역구제협력위원회”의 FTA 발효 이후 설치 건은 차선책이라고 위안삼기에는 아쉬움이 크다. 위원회 설치를 협정문에 명시하면 미국이 우리 기업에 반덤핑 조치를 남발할 수 없으리라는 기대는 순진하다 못해 애처로운 구애의 모습처럼 비친다. 한미 FTA 협상의 고지를 지척에 두고 중도하차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최선의 협상 결과에 이르기 위해서는 꿋꿋이 나아가야 한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 이 글은 2007년 3월23일 언론에 투고한 내용이다


-내가 1년동안 가르침을 받은 김태황 교수님이 기고하신 글이다...-

Posted by Takumi

2007/04/28 17:31 2007/04/2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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