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만족못시키면 도태” 대학가 ‘고객주의’바람
통학버스 노선 늘리고 졸업후 취업지원 서비스
원주 상지대는 올 들어 통학버스 노선을 12개로 늘렸다. 10년 전 3개뿐이었던 버스노선이 4배로 급증했다. 예전에 이 학교는 분당, 동서울, 강남 등 세 곳에만 통학버스 정류장을 두고서 학생들에게 “알아서 타라”는 식으로 노선을 운영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새 노선을 원하는 학생이 40명만 되면 즉시 노선을 신설한다”고 상지대 홍보실 홍건표(42)씨는 말했다. 이 대학의 모토는 ‘학생 제일주의’다. 2년 전 취임한 김성훈 총장(전 농림부장관)은 “학생을 최고의 서비스를 받는 고객으로 삼지 않으면 대학이 살아남기 힘든 시대가 됐다”면서 “학생을 대학의 주인으로 섬기겠다”고 말했다.
◆학생=고객=왕
학생을 ‘왕처럼 모시는’ 고객만족 서비스 바람이 대학가에 몰아닥치고 있다. 기업이 미리 시장조사를 하듯이 학생이 듣고 싶은 강의 수요를 사전에 조사하는가 하면, 학생들의 평가를 교직원 인사에 반영하는 곳도 생겨났다. 졸업 후 취업을 못한 학생들에게도 취업 지원을 하는 등 ‘애프터서비스’도 도입되고 있다.
성균관대는 학생들에게 수강신청을 1년 단위로 받는다. 학생들이 다음 학기에 듣고 싶어하는 강좌 내용을 미리 파악해 강의반을 늘리거나 줄이기 위해서다. 성균관대 관계자는 “학기마다 수강신청을 받으면 한꺼번에 학생이 몰려 콩나물 시루 같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받게 하는 일이 생긴다”면서 “학생들의 불이익을 없애기 위해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서도 강의 수요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한국외대 대학원 건물 1층에 설치된 안내데스크에서 직원이 학생들에게 행사 정보를 안내해 주고 있다. /한국외대 제공
무뚝뚝했던 대학행정에도 학생 요구에 맞추는 기업식 서비스가 확산되고 있다. 곽수근 서울대 경영대학장은 올해 1월 취임을 하면서 점심시간에도 행정실 문을 열게 했다. 곽 학장은 “점심시간에 문을 닫는 은행을 봤느냐”며 “학생들이 몰리는 점심시간에 행정실 문을 닫는 것은 난센스”라고 말했다.
중앙대도 오는 18일 ‘대학문화 바꾸기’ 선포식을 열고 학생 중심 행정서비스 헌장을 발표할 계획이다. 중앙대 관계자는 “예산 10억원을 들여 본관 1층에 있는 입학처, 사무처, 교무처를 원스톱 행정서비스 센터로 통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외대 박철 총장은 올해를 ‘학생 감동의 해’로 선포하고 대학원 건물에 기업 현관에서나 볼 수 있는 안내데스크를 설치했다. 안내데스크 여직원은 학생이 들어오면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하고 특강 일정 등을 알려준다.
부경대 공대는 올해부터 원하는 학생들에게 학교 뉴스나 취업설명회 등의 일정을 문자메시지(SMS)로 보내주고 있다. 이 학교 전자정보통신공학 이준석(25)씨는 “예전에는 학생들이 게시판을 돌며 일일이 일정을 챙겨야 했는데, 지금은 학교로부터 고객관리를 받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 ▲부경대 학사관리과는 학생 눈높이에 맞춰 책상을 은행창구처럼 낮추었다. /부경대 제공
대학들이 특히 신경 쓰는 것은 학생들에 대한 취업 서비스다. 연세대와 고려대는 다음 학기부터 학생들의 봉사활동 내역, 인턴 경력 등을 기록하는 경력증명서를 발급해 줄 계획이다.
◆저출산·조기유학에 따른 학생 수 감소가 원인
국내 대학들이 ‘고객주의’를 중시하게 된 데는 절박한 사정이 작용했다. 작년 전국 200개 4년제 대학 중 18곳은 충원율(모집정원 대비 등록률)이 70%에도 못 미쳤다. 10개 대학은 모집정원의 50%도 채우지 못했다. 저출산 현상과 조기 유학 붐으로 인해 학생 수가 감소함에 따라, 학생에게 외면당하는 학교는 재정난에 부딪혀 망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서울지역 한 사립대의 보직교수는 “이제 대학은 물론 (대학 내) 학과들도 학생의 선택을 받기 위해 서비스 경쟁을 하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곽수근 서울대 경영대 학장은 “서울대이기 때문에 학교가 손을 놓고 있던 때는 이미 지나갔다”며 “학교가 변화하지 않으면 (우수 학생을 해외대학 등에 빼앗겨)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Posted by Takum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