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반도체 공급과잉 장기화될 전망
“기술개발로 생산량 급증… 수요는 미약”
한국의 대표 산업인 반도체 부진이 심상치 않다. 주요 메모리 반도체 제품인 D램은 고정거래가격이 올해 초 6달러 안팎에서 9월 말 현재 2달러 아래로 폭락한 상태다. 힘을 잃은 반도체 가격은 하반기 들어 반짝 오름세를 보이며 회생 기미를 보였지만 이내 하락세로 돌아섰다.
문제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공급 과잉 현상이 단시일 내에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선 마이크로소프트의 새 운용 프로그램인 ‘윈도 비스타’가 반도체 부품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PC(개인용 컴퓨터) 교체 수요를 견인하지 못하고 있다. 플래시 메모리 수요를 폭발시켰던 디지털 카메라나 MP3 같은 새로운 디지털 제품의 시장 출시도 늦어지고 있어 반도체 산업이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 ▲ 대만의 반도체 기업들이 최근 공격적인 시설 확장에 나서고 있다. 대만 기업들은 반도체 생산량을 기존보다 2.5배 가량 늘릴 수 있는 300㎜웨이퍼(반도체 원료인 원판) 생산라인을 본격적으로 건립 중이다. 사진은 대만 TSMC의 한 연구원 /블룸버그
구조적인 공급 과잉
세계 반도체 업체들은 최근 2~3년간 공격적으로 생산량을 늘렸다. 삼성전자가 작년부터 가동에 들어간 15 라인을 비롯해 2012년까지 330억달러를 투자해 8개 신규 생산라인을 건설키로 했다. 하이닉스도 2010년까지 4개 팹(fab:반도체 생산라인)을 짓기로 하고 지난 4월 청주에서 신설 라인 건설을 착공했다.
프로모스·난야 등 대만의 D램 업체들도 올해 잇따라 각각 월 6만장, 6만2000장의 웨이퍼(반도체의 원료인 원판)를 가공할 수 있는 팹을 가동했다. 또 세계 5위의 D램 생산업체인 엘피다메모리는 올해 초 세계 최초로 70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m)급 D램 양산을 시작한 데 이어 대만의 파워칩 반도체와 합작기업을 설립해 대만 중부 지역에 4개의 제조라인을 건설, 2011년부터 월 24만장의 웨이퍼를 생산할 예정이다. 세계 2위의 플래시메모리 제조업체인 도시바도 올해 초 56나노급 낸드(NAND) 플래시 메모리 양산에 들어갔고, 미국의 반도체업체인 마이크론도 세계 최고의 반도체 업체인 인텔과 손잡고 본격적인 플래시 합작법인을 설립해 국내 업체들을 바짝 뒤쫓고 있다.
강자의 게임 ‘룰’이 안 통한다
LG경제연구원 이병주 선임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해외 업체들의 공격적인 시설투자로 인해 그 동안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절대강자로 군림했던 국내 업체들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예를 들어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 부문 삼성전자, 비(非)메모리 인텔 등으로 강력한 하나의 업체가 독점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는 것. 기술·자본·생산 능력이 크게 앞서 있는 이들 업체가 공격적인 투자와 기술 개발로 새로운 시장을 선점한 뒤, 후발 업체가 쫓아오면 가격을 인하하는 방식으로 후발 기업을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전략을 써왔다. 이 연구원은 “이러한 방식은 시장이 성장할 때에는 들어 맞았지만 시장이 정체되거나 소비자의 니즈(욕구)의 변화가 더딜 때에는 효과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기술 개발의 부메랑
수요가 강력하지 않는 상황에서 빠른 기술 개발이 오히려 공급 과잉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분석도 있다. 우선 올해 초 출시됐던 윈도 ‘비스타’가 기대만큼 반도체 수요를 견인하지 못하고 있다. 안정성 등을 이유로 아직은 윈도 ‘비스타’를 장착한 PC 출시가 그리 활발하지 않다. 시장조사 기관인 포레스트 리서치는 지난 8월 “MS의 공격적인 마케팅에도 불구하고 미국 기업들은 비스타 사용을 계속 미루고 있다”고 밝혔다. 심지어 베이징 올림픽의 공식 PC도 윈도 ‘비스타’가 아닌 ‘윈도 XP’를 채택할 것으로 알려질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하이닉스 등 국내 업체는 물론, 기술력에서 한 수 아래로 여겨졌던 대만의 반도체 업체들이 잇따라 나노 기술(초미세 회로 기술)을 채택해 반도체 집적도(集績度)를 2배 이상 높였다. 여기에 대부분 업체들이 기존의 200㎜ 웨이퍼 공정보다 생산량이 2.5배 가량 늘어나는 300㎜ 웨이퍼 공정을 채택, 주요 업체들이 기술 개발을 통해서만 공급량을 2000년대 초에 비해 5배 가량 늘린 셈이다. 미래에셋증권 김경모 이사는 “강력한 수요가 뒷받침 되지 않는 상황에서 빠른 기술 개발이 공급과잉으로 이어져 오히려 업체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진단했다.
구조조정 가시화되나
반도체 전문가들은 현재와 같은 공급 과잉 현상이 내년 상반기까지 지속될 것으로 일단 예상하고 있다. 이럴 경우 하위업체들과 삼성전자 등 상위업체들간의 격차가 더욱 벌어져 지난 1990년대 말처럼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구조조정이 또 한번 가시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메모리 반도체 업계가 무엇보다도 이미 수 차례의 구조조정을 통해 이미 문을 닫을만한 곳은 문을 닫았다는 이야기다. 현재 세계 메모리 반도체 업체의 분포를 보면 남아 있는 메모리 업체가 삼성전자·하이닉스(한국), 인피니온 키몬다(독일), 마이크론(미국)·엘피다 메모리(일본) 등으로 국가에서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대만·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제외하면 이미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완결된 상황이다. 그래서 이미 구조조정 과정이 과거보다도 훨씬 더 험난하고 생존기업들의 출혈도 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D램과 플래시 메모리
D램은 dynamic random access memory의 약자. 일반적으로 컴퓨터의 보조기억장치로 쓰인다. 데이터를 빠른 속도로 저장하는 게 특징. 하지만 전원을 끄면 입력된 내용이 곧바로 사라져 버린다. 반면 플래시 메모리(flash memory)는 전원을 차단해도 저장된 데이터가 사라지지 않는다. 디지털 카메라, MP3 플레이어, 컬러 휴대폰 등의 저장 장치로 많이 사용된다.
Posted by Takum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