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진출 한국기업 비상

최근 영세한 한국기업들 '맨몸 철수' 늘자
임금·거래대금 회수 명목 인권침해 잦아
"칭다오에선 1주일에 4~5건씩 피해 발생"

중국 산둥성(山東省) 지모(卽墨)시에서 H피혁 공장장을 맡고 있는 C부장은 지난 12월 말 퇴근하려다 갑자기 들이닥친 10여 명의 괴한들에 포위됐다. 괴한들은 C부장을 떠밀어 사무실에 감금한 뒤 문을 잠그고 "반항하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두려움에 떨던 C부장은 이들의 말을 들어보고 공장 건물주가 보낸 '주먹들'이란 것을 알아챘다. 괴한들은 "밀린 임대료를 내라"며 3일간 C부장을 위협했다.


H사는 2005년 8월 중국에 진출, 공장 건물을 5년간 임대했다. 지난해 인건비 상승 등으로 채산성이 악화되자, 한국 본사는 중국 공장 철수를 결정했다. 공장 건물주와는 남은 2년간의 임대료를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러나 건물주는 임대료 전액을 요구하며 협상을 거부하고 깡패들을 동원한 것. C부장은 휴대폰으로 가족에게 연락해 6개월치 임대료를 구해 전달한 후에야 풀려났다.

괴한들은 C부장을 풀어주며 "당신 집이 어디인지, 아이들이 어느 학교 다니는지 다 안다"면서 "한국으로 도망갈 생각은 말라"고 가족 안전까지 위협했다. C부장이 감금돼 있는 동안 가족들은 한국영사관에 신고해, 경찰이 출동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인근 파출소 경찰들이 회사 정문까지 와서 건물주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누고는 그냥 돌아갔다"고 C부장은 말했다. C부장은 "매일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중국에 온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 중국 산둥성 칭다오(靑島) 북쪽 지모(卽墨)시에 있는 한국 피혁업체. 이 회사 한국인 공장장은 작년 말 중국인 공장 건물주가 보낸 깡패들에게 3일간 감금됐다 풀려났다. 공장건물 앞에 태극기와 오성홍기가 나란히 나부끼고 있다. /칭다오
◆"한국인 폭행·납치 일주일에 4~5건 발생"

최근 중국 산둥성 지역에서 중국인에 의해 감금·납치·폭행당하는 한국인이 급증하고 있다. 한국기업의 '맨몸 철수'가 늘어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칭다오 한국총영사관의 김찬원 영사(사건담당)는 "최근 이 지역에서 우리 교민들이 거래업체 대금 미지급과 채권·채무관계로 폭행당하거나 납치당하는 사건이 1주일에 4~5건은 발생한다"고 말했다. 김 영사는 "거래업체 직원들이 한국 사장을 납치해 '귀국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고 풀어주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12월 칭다오 인근 핑다오(平島)지역의 전자부품 제조업체 사장은 회사 직원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식당문을 나서다 자동차로 납치된 뒤, 2시간 만에 경찰에 구출됐다. 범인들은 채권·채무관계가 있는 거래처 사람들로 밝혀졌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중국에서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법' 대신 '해결이 빠른 주먹'에 의존하는 것이 만연돼 있다. 지난해 산둥성 웨이하이(威海)의 삼성전자 협력업체 사장은 일식당 화장실에서 괴한 2명으로부터 테러를 당했다. 그는 괴한들이 내리치는 흉기를 손으로 막다가 손가락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다.

사건 발생 후 삼성전자가 현지정부에 강력히 항의해 경찰이 수사한 결과, 범인은 회사 구내식당을 도급운영하다 교체된 전 식당주인이었다. 음식 질이 나빠 사장이 그를 내보내자 앙심을 품고 동북지방의 '깡패'를 동원한 것이다.

기업뿐 아니라 식당 사우나 미용실 등 소규모 한국업소에까지 폭력배들이 손을 뻗친다. 칭다오 청양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한국인은 "흑사회(黑社會·폭력조직) 조직원들이 매월 일정액을 뜯어가고 수시로 공짜밥을 먹고 간다"고 말했다. 직접 이해관계가 없는 현지 주민들도 위협을 서슴지 않는다.

핑다오(平島) 식품(고추장)제조업체의 한국인 관리부장(42세)은 공장 출입로 사용료를 내라는 현지 주민들의 협박을 견디다 못해 작년 말 자살했다.

◆"올 상반기 최대 위기 온다"

2008년은 베이징(北京)올림픽의 해지만, 기업들에는 '최악의 해'로 꼽힌다. 올해부터 ▲노동자 권익을 강화한 노동계약법 ▲내외자 기업 공히 25%의 세금을 내는 기업소득세법(그동안 외자기업은 15%의 세금만 냈다) ▲외자기업에 대한 토지사용세 부과 등이 한꺼번에 시행된다. 칭다오에 진출한 한국기업은 5000여 개. 이 가운데 '성실 경영'과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넘긴 기업도 있지만, 섬유 봉제 액세서리 피혁 등 노동집약형 산업을 중심으로 한계에 도달한 기업도 적지 않다.

칭다오 한인상공회 성정한 사무국장은 "중국의 경영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문을 닫을 기업이 설 전에 약 10%(500개), 올 상반기 중에 약 20%(1000개)에 달할 것이라는 비관적 관측이 많다"면서 "이 과정에서 한국인 '인권침해' 증가와 '멀쩡한 기업의 도산'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칭다오 청양구에서 액세서리 제조업을 하는 S사장은 "이대로 가면 경영이 어려운 기업의 중국 노동자들이 설 연휴 때 한국 기업인의 귀국을 저지하거나 가족을 인질로 잡는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정상적으로 잘 운영되는 기업조차 '무단철수 기업'으로 의심 받아, 주문 취소나 원자재 공급중단, 종업원의 설비·매각 등으로 도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코트라 칭다오 무역관 황재원 부관장은 "한국기업의 '맨몸철수'와 '한국인 납치폭행' 문제에 대해 양국 정부가 대책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Posted by Takumi

2008/01/24 11:05 2008/01/24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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