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우정 도쿄특파원
일본에 ‘규카쿠(牛角)’란 음식점이 있다. 불고기를 중심으로 김치, 냉면, 육개장 등을 파는 전형적인 한식당이다. 하지만 영업 방식은 일본식이다. 어두컴컴한 실내에서 종업원들은 ‘닌자’풍의 옷차림을 하고 있다. ‘렉스 홀딩스’라는 일본 상장기업이 운영한다. 이미 일본 요식업계의 큰손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 800여 곳에 이 규카쿠 체인점이 있다. 덕분에 신주쿠나 아카사카처럼 원래 한국 식당이 많은 곳을 일부러 찾지 않아도 도쿄 어디에서나 한식을 쉽게 즐길 수 있다. 우리 입맛엔 좀 들척지근하지만 먹을 만하다. 물론 일본인들 입맛엔 더 맞을 수도 있다.
규카쿠는 한국식을 일본에 확산시킨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식 운영 때문에 일본에서 한식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한국 음식이 ‘한국 것’이라는 인식이 엷어지고 스파게티나 카레처럼 일본화된 인기 있는 음식 중 하나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규카쿠는 일본 성공의 여세를 몰아 미국과 대만, 싱가포르에도 모두 13개 점포를 냈다. 미국 부자들이 산다는 베벌리힐스, 휴양지인 와이키키에도 규카쿠가 있다. 일본에서 그랬듯, 음식은 한식, 운영은 철저한 일본식이다.
몇달 전 일본 잡지 ‘부루투스’가 ‘쿨 재팬(Cool Japan)’이란 특집 기사에서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 패션의 대표주자들과 함께 규카쿠를 소개했다. 세계 각지에서 일본 문화가 인기를 끌어모은다는 내용이었다. 한식을 파는 규카쿠가 세계에 일본 식문화를 전파하는 대표로 꼽힌 것이다.
우리는 비빔밥, 김치, 냉면이 인기를 모은다고 한식이 세계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식재료와 식문화를 구분하지 못하는 탓이다. 비빔밥과 김치, 냉면은 원래 한식이다. 하지만 음식 포장, 식기(食器), 식당 인테리어, 종업원의 행동, 주문 방식 등 일본의 식문화 속에서 들어가면 비빔밥은 식문화를 구성하는 하나의 재료에 불과하다.
고급 쌀로 인정받는 일본 ‘고시히카리’가 중국과 대만, 싱가포르에 식재료로서 수출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이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스시(생선초밥) 열풍’처럼 밥을 중심으로 한 일본 식문화가 ‘건강식’이자 ‘고급식’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스시를 만드는 밥은 역시 일본 쌀을 사용해야 한다는 인식이 고급 식재료인 고시히카리를 수출선에 태운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스시는 서양식 레스토랑이 아니라 스시 카운터 안에서 요리사가 초밥을 주무르는 일식당에서 제공된다. 일본이 세계에 먼저 수출한 것은 스시란 식재료가 아니라 스시를 제공하는 식문화였다.
일본 정부는 식(食)산업을 앞으로 일본을 먹여살릴 수출산업으로 꼽고 있다. 죽어가는 농업을 살리는 데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일본 식문화를 전파하는 일식당을 확산시키기 위해 ‘인증제’와 같은 아이디어도 짜냈다. 하지만 정부가 나선다고 산업이 움직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기업이 내수시장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세계로 진출하기 시작하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 신호라고 볼 수 있다.
규카쿠의 성공은 역설적으로 한식의 경쟁력이 무한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경쟁력을 한국의 국익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선 우리도 단기적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자본력과 사업을 확장하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재벌이 식당을 한다”고 손가락질할 일이 아니다. 이제 한국 식문화와 식산업도 우리 대기업이 검토하는 차세대 사업의 하나로 당당히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Takumi

